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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도 붉었다. 그 빛깔은 지금 제 눈 앞을 채운 하늘을 닮은 색이기도 했고 전장을 닮은 색이기도 했고, 그 날에 내가 보지 못한 당신의 색을 닮아있기도 했다. 품에 안은 꽃무릇을 다시끔 고쳐 안아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평소와는 다르게 걷고 싶었다.

지나가는 길목의 저와 같은 이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듯한 기척이 있었지만 오늘은 그저 지나가기만 했다. 그 틈에서도 자신에게 오는 이들도 있었으나 제 품의 꽃무릇을 보고는 조용히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그런 의미였다. 꽃무릇은.
 벌써 많은 것들이 그의 주위를 채우고 있었고 고요 또한 한 몫을 하고 있었다. 자신은 늦은 축에 속한 것이리라. 그것 또한 자신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늘 자신은 이곳에 그 누구보다도 늦게 도착하고는 했다. 작은 규칙이자 약속이었다. 누구와 했을지 모를.
 품에서 갈색 종이 포장지가 바스락거렸다. 꽃무릇의 가느다란 술들이 제 팔을 간지럽혔다.

많은 것들 사이로 제가 가져온 꽃무릇이 피었다. 슬픔 속의 모순과도 같아 잠시 내려놓을지 다시 고민하다가 가지런히 정리해 한 켠에 두었다. 눈부시게 흰 꽃들 사이로 제 것만이 붉었다. 마치 그 날의 당신과도 같았다.

"스승님."
"왔소, 겐지."

 제자는 다른 이들과 같이 흰 꽃을 들고 있었다. 올해는 두 꽃을 당신에게 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과연 좋은 것인지는 그 누구도 답해주지 못하리라.

"그 꽃은 무엇입니까?"
"꽃무릇이오. 붉은 상사화가 더 알려진 이름이긴 하오."
"그렇군요."

 허나 나는 붉은 상사화라 부르지 않았다. 당신에게 붉다는 말은 별로 쓰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이기에 더욱이 쓰고 싶지 않았다.

"의미가 달리 있으십니까?"
"...그 날의 그와 닮았소."
"예?"
"총탄이 그를 지나간 그 흔적과 닮았기에 가져왔소."
"..그렇습니까."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제 설명을 제 제자는 알아들은 것인가. 우스운 상황이 아니지만 웃음이 났다. 그가 왜 아직도 자신의 제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충분히 그는 이제 자신을 뛰어넘었을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그 또한 그 날의 그에게서 붉은 빛을 볼 수 있었겠지.

"닮았군요."
"...그렇소."

 그 날 당신을 떠나보낸 총탄에서는 붉은 빛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당신에게서 그 빛을 보았다. 납덩어리가 지나간 자리에서 피어났어야 할 뚝뚝 떨어지는 핏빛을 우리는 보았다. 꽃무릇처럼 피었을 그 빛이 꺼져가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꺼져버린 그 빛을 항상 저는 애도했다. 그리고 모두가 그러했다.
 꽃무릇을 품에 안았다.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달리 말하면 다른 누군가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모두를 향한 것임과 동시에 그 하나만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제 봄이 오고 있나 보오."
"그렇군요."

 품에 안은 꽃무릇을 조금 보듬었다. 당신을 만나러 오는 날은 그랬다. 추운 겨울을 이기고 모두가 반기는 따스한 봄날과도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늘 꽃무릇을 준비했다. 이 슬픔을 이겨내고 나면 봄이 다가올테니까. 나는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가시겠습니까?"
"그러하지. 기다려주어서 고맙소."
"별말씀을요."

 봄은 온다. 그 아픈 겨울을 견디고 봄은 왔다. 아릴만큼 아름다운 붉은색이 행복을 반긴다. 이제는 웃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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